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우리는 광속의 한계로 미리내은하에 감금된 지렁이가 아니다.

최근, 우주의 광대한 크기를 실감케하는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을 보게되었다 :

 

이 영상은 우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Space Engine’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Space Engine은 매우 넓은 범위의 우주를 재현하며 특히나 상대론을 무시하고 광속보다 빠르게 이동 할 때의 광경이 어떨지 시뮬레이션 해 볼 수 있다.

 

2023년 기준 관측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의 갯수는 약 2천억개이다. 그리고 우리은하에서 출발한 빛이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까지 닿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50만년이다. 광속은 우주적 관점에서보면 너무나도 느린 것이다. 위 영상은 그런 사실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지구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속도를 높이며 더 큰 스케일로 나아간다는 영상의 짜임새와 그 분위기에 맞는 BGM선정 역시 훌륭하게 느껴졌다. 영상공개 3달만에 200만뷰를 기록한건, 그만큼 많은 이들이 그 속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만든건 영상이 어니라 댓글이었다. top comments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

‘전에 우주의 한 단면을 사진으로 계속 확대해서 본 영상을  봤을때도 어마어마 하구나 하고 느꼈는데 속도로 보니 더욱 실감 나네요.. 우리의 존재가 티끌조차도 되지 않는다는걸 새삼 다시 느끼네요.’

 

‘빛 30조 배의 속도로 이동해도 은하와 은하 사이의 거리를 이동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린다는 것에서 충격먹었습니다..진짜 그냥 보는동안 계속 터무니없이 웃은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이보다 더 체감되는 우주 컨텐츠가 있을까..? 말로맘 광속광속했지 진짜 우주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속도였네; 3조배 조차도 정지된 느낌이라니…’

 

‘우주의 스케일을 체감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건 필자 역시 영상을 보며 생생하게 느낀바이다. 하지만, 이 영상이 그런 광대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이며, 실제 광속여행[1]은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는 사람 - 혹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어보였고, 이는 꽤나 놀랍게 느껴졌다.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관측가능한 우주의 지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link :

 

위 부채꼴의 반지름 길이는 약 465억 광년이고, 그 속의 점 하나하나가 은하를 나타낸다[2]. 관측가능한 우주의 극히 일부만을 나타낸 이 이미지 속에[3] 20만개의 은하가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힌다. 지구에서 출발한 빛이 원점에서 반지름의 끝까지 닿는데 까지 465억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4], 그 광활함에 압도되어 공포심마저 느껴진다.

 

인간이 기술적으로 도달가능한 현실적인 속도를 감안하면 그 공포심은 좌절감으로 바뀐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 까지의 거리는 지구로부터 약 4광년이다. 이는 2023년 기준 인간이 만든 가장 빠른 물체인 ‘파커 태양 탐사선 최대속도 시속 692,000 km’으로도 1만년이 훨씬 더 걸리는 거리이다. 만약 그 속도로 안드로메다까지 가려면 50억년이 넘게 걸린다.

 

상대론에 의하면 질량을 가진 물체는 빛보다 빠르게 달릴 수 없다. 따라서 설사 광속에 극도로 근접한 속도를 현실세계에서 구현 가능해졌다 한들, 그것이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닿는데는 250만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그 많은 점들 하나하나가 다 은하라는데, 가장 가까운 이웃은하까지 최소 250만년 이라니 …. 이 정도면, 정말이지 인간은 광속이라는 제한속도로 우리의 미리내 은하에 감금되어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드는것 같다.

 

하지만 대단히 아이러니 하게도, ‘광속’이라는 제한속도는 우주여행을 훨씬 더 실현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위에서 말한 두 지점간의 이동시간은 모두 ‘지구’ 혹은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미리내 은하’를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상대론이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그 ‘시간’이란것이 서로 다른 속도로 이동하는 관측자에게 있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지구에서 광속 \(c\)에 대해 \(\frac{\left|c-v\right|}{c}=10^{-10}\)를 만족하는 극단적으로 빠른속도 \(v\)로 이동하는 우주선을 가정해보자[5]. 지구기준에선 이 우주선이 광속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이동하므로, 그것이 안드로메다까지 닿는데는 빛과 거의 비슷한 250만년 정도가 걸린다.[6] 하지만 우주선에서 느끼는 시간은 250만년에 \(\gamma\) (\(\gamma = \left[ 1- v^2/c^2\right]^{-1/2}\))를 나눠주어야 한다. 우주선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이 값은 급격히 켜지는데, 우리가 가정한 경우의 \(\gamma\) 값은 약 7만정도 이다[7]. 즉, 우주선에서 느끼는 안드로메다까지의 이동시간은 250만에 7만을 나눈 약 35년 정도가 되는 것이다. 만약 \(\frac{\left|c-v\right|}{c}=10^{-15}\)라면 그 시간은 1달 수준으로 줄어든다.

 

아마 이런 계산이 너무나 이론적이고 실현불가능한 가정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시간지연/공간수축등의 상대론적 효과는 지난 120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실험과 이론적 고려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되었다. 다른것들을 다 무시하고 오직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해봐도, 현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GPS나 원자력발전은 그 상대론적효과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작동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1달만에 안드로메다까지 가는 여행도 기술적 한계만 극복된다면 안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인간의 직관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가 광속의 한계에 묶여있는 존재라 생각하는것 같다.

 

지금은 정규 교과과정 상에 상대론과 양자역학이 들어간걸로 알고있다. 또, 유튜브에 수없이 많은 우주나 과학관련 영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지연이나 길이수축과 같은 상대론적 효과에 꽤나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 이론을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 쓰이는 소재 정도로, 또는 교과서에서만 유효한 과학이론 정도로 느끼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영상을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땐 꽤나 릴렉스된 상태였고, 당연히 영상제작자가 상대론적 효과를 인지한 상태일거라 생각했었다. 헌데 다시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상 마지막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빛의 속도의 10조배가 넘는 속도조차 터무니 없는 우주공간에서는 태평양을 횡단하고자 하는 지렁이의 몸부림을 뿐입니다 … 이렇게 광활한 우주공간을 볼 때 속도의 한계는 너무나도 작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인간은 미리내은하에 감금된 지렁이가 아니다. ‘광속’이라는 한계는 우리를 우주 속에서 제한된 존재로 만드는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은 우주여행이 훨씬 더 ‘가능한 무언가’임을 깨닫게 해준다.


[1] 지구기준에서 광속에 매우 근접한 속도로 이동하는 상태를 ‘광속여행’이라 부르겠다.

[2] 우주나이가 137억년이니 반지름은 그 동안 빛이 이동 할 수 있는 거리인 137억 광년 이어야 할 것 같지만, 본문의 수치는 우주팽창을 고려한 값이다.

[3] 광속은 사방으로 동일한 속도로 운동하니, 우주의 나이인 137억년 동안 지구에 도달한 빛의 경로를 다 모으면 지구를 중심으로 한 구 (sphere)가 될 것이다. 위 이미지는 그 전체 중에서 ∆𝜃=90°, ∆𝜑=10°에 해당하는 영역에 있는 은하들만을 나타낸 것이고, 이는 약 20만개의 은하를 포함한다. 관측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총 은하의 개수는 불확실성이 꽤나 있는것 같지만, 과학자들은 대략 2천억개의 은하가 있을것으로 추정한다.

[4] 빛이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우주팽창을 무시하고 정지된 이미지를 기준에 봤을때

[5] Dyson sphere 같은 구조물로 태양 전체 에너지의 일정부분을 포집 할 수 있다고 하자. 100kg 물체를 \(\left|c-v\right|=10^{-10}c\)를 만족하는 속도 \(v\)로 가속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는 약 636×1021 J이다. 태양이 내뿜는 에너지의 양은 초당 약 3.8×1026 J인데, 이 중 0.1%를 실시간 포집 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에너지를 모으는데 약 1.66초가 걸린다.

[6] 우주선과 지구가 빛으로 교신한다면, 우주선이 안드로메다 까지 가는데 250만년이 걸리고, 그때 발사된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또 250만년이 걸려, 실제로 우주선의 편도여행을 확인하는데는 총 500만년이 소요된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이런 상황을 ‘지구에서는 우주선이 안드로메다 까지 닿는데 250만년이 걸리는 것으로 느낀다’는 정도로 표현한다.

[7] \(\gamma\) 값 계산기 : Lorentz Factor Calcul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