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주로 자연과학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많은 관심을 받게되었고, 그만큼 많은 댓글도 달렸다. 그 댓글들을 보며 느낀 놀라운 사실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1].
그것은 아마, 일론 머스크가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굳게 믿고있다는 사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결과라 생각한다. 그의 인터뷰영상은 시뮬레이션 가설을 주제로 한 유튜브 영상에 단골로 등장하는데, 유명 과학유튜브채널 ⟪1분과학⟫이나 ⟪지식보관소⟫영상에서도 역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마 시청자들은 그런 영상들 속에서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알게모르게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학계 일각에서 우주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으로 시뮬레이션 가설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튜브에 떠도는 영상속에는 엄밀하거나 납득이가는 과학적 근거가 심히 부족하며 그런 영상에 기반하여 인터넷에 떠도는 설들은 과학보다는 음모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재 알려진 시뮬레이션 가설의 뿌리는 철학자 Nick Bostrom의 2003년 논문이다. 앞서 언급한 유튜브 영상을 포함한 대부분은 Bostrom의 논리를 따르는데, 그 논리의 첫가정은 ‘인류의 계산능력(computing power)은 지금까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래의 후손은 실제와 구분할 수 없는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게 될것이고 그 시뮬레이션 속에서 또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원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것이 시뮬레이션 가설의 주요골자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그러한 가정과 논리전개가 한편의 공상과학소설 같이 느껴진다.
사람 한명을 시뮬레이션 하려면 컴퓨터는 사람 몸속의 모든 생체분자들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과학수준은 어떤가? 사람 한 명? 해당분야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들은 사람은 커녕 세포 하나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물분자, 이온, 생체분자 몇백개로 수행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국제저명 학술지에 실릴정도로[2] 현 인류는 생명에 대해서 아는것이 별로 없고 계산할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세포하나도 시뮬레이션 못하는 상황에서 대체 어떤 근거로 먼 미래 후손들은 의식을 가진 인간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확신하는것인가?
이런 문제는 그저 컴퓨팅 파워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것만은 아니다. 20세기 중반, ‘천재 중에 천재’라 불뤼는 폰 노이만에게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기상을 통제하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기상이라고 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기체나 액체분자들의 운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뉴튼역학에 근거하면 모든 입자들에 대한 초기조건을 알면 그것들의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므로, 그는 기상예측이라는것이 충분한 컴퓨팅 파워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던것 같다. 하지만 1960년대 초 -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기상현상은 그 속에 내제한 비선형성 때문에 근본적으로 예측불가능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혔고, 따라서 폰 노이만의 아이디어도 실현 불가능 함이 밝혀졌다.
우주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모든 천체와 생명과 입자의 작동원리를 입력해야 한다. 우리 인류는 자연에 대한 그 정도의 이해가 없고 그것을 위해 어느정도의 컴퓨팅능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뮬레이션 가설이 컴퓨터만 좋아지면 완벽한 기후예측이 가능할거라 생각했던 20세기 중반의 주장과 다를바가 무엇인가 싶은 생각이든다.
일론 머스크 인터뷰영상과 함께 시뮬레이션 가설을 다루는 유튜브 영상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제는 바로 양자역학의 측정문제이다. 필자가 시뮬레이션 가설의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공상과학 소설같다’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면, 양자역학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보다 더 비판적 입장이다. 그것이 양자역학에 대한 오개념을 확산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과 시뮬레이션 가설을 연결하는데 쓰이는 대표적 논리는 이런것이다 : ‘컴퓨터 게임에서는 게이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에 대해 불필요한 연산을 하지 않는다. 오직 게이머의 시야에 관측되는 부분만 계산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측하면 입자로 바뀐다는 양자역학의 측정문제와 같지 않는가? 양자역학에서도 입자는 관측하는 순간 실체로 변한다’
이러한 주장은 뭔가 그럴싸하고 멋잇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관측되지 않을 때, 파동함수는 시간에 대한 ‘unitary evolution’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파동함수는 위치가 관측된 직후에는 해당위치에 delta function인 상태로 붕괴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 다른 운동량에 대한 분산이 일어나 다시 위치가 불확실한 상태가 된다. 이렇듯, 관측을 하지 않는다해서 파동함수가 변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시뮬레이션 용어로 하자면, 관측되지 않을때도 어떠한 종류의 연산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주는 관측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연산 하지 않는다’는 말은 참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은 틀린말이다. 만약 그 말이 양자역학의 측정문제가 시뮬레이션의 계산효율개선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었다면, 어떻게 unitary evolution이 wave function collapse보다 컴퓨팅 파워가 덜 소모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구체적 설명없이 컴퓨터 게임의 연산문제와 양자역학의 측정문제를 직접적으로 대응시키는 것은 시청자로 하여금 파동함수가 관측되지만 않는다면 시공간상에서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오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시뮬레이션 가설을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 했지만, 필자는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 우주가 아니라고 단정할 만한 어떤 근거도 내세울 수 없다. 오히려, 과학을 깊이 공부할 수록 자연의 원리가 시뮬레이션 가설에 부합한다고 느낀적도 적지않다.
일론 머스크 같은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저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시뮬레이션류 이론에 대한 옹호자들이 꽤나 있는데, 과학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천체물리학자 Neil deGrasse Tyson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시뮬레이션 이론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제기 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필자 또한 과학을 공부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적 종종 있었다. 가장 강렬했던 것은 불확정성 원리를 공부하면서 였는데, 그것은 운동량 연산자가 행렬로 표현 될 수 있기 때문에 운동량과 위치의 교환불가성이 설명된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이다.
어떤 유한한 구간에 대해 시뮬레이션 하려면 필히 그 구간을 격자형태로 나누어야만 한다. 그 구간을 구성하는 무한한 점들을 계산하려면 무한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 우주가 유한한 컴퓨팅 파워로 돌리는 시뮬레이션이라면 필히 시공간을 격자형태로 구성해야하는데, 그러한 유한한 요소들에 대한 연산이 바로 행렬의 연산이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운동량에 대한 canonical substitution (\(p\)→ \(\frac{\hbar}{i}\frac{\partial }{\partial x}\))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시뮬레이터가 운동량을 그렇게 입력해 넣었다고 한다면 그만인것이다.
이런식의 논리는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시공간이 양자화되어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물리현상을 통해 시뮬레이션 가설을 실험적으로 검증 하려는 시도도 있다. 그들은 원자핵을 설명하는 ‘강력’이라는 것을 시뮬레이션하는 핵물리학자들인데, 그들 역시 격자형태의 시공간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2012년 워싱턴 대학교의 핵물리학자들은 몇몇 가능성 중 고에서지의 우주선(cosmic ray)에 대한 회전대칭의 깨침(rotational symmetry breaking)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통해 시공간 격자의 구조를 알아낼 수 있을것이라 예상한 바가 있다.
공교롭게도 그 논문저자 중 한명은 시뮬레이션 가설을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영상에서는 다른 비전문가들의 영상과는 달리 일론 머스크도, 양자역학의 측정문제도 나오지 않는다. 앞선 필자의 분석과 그러한 전문가의 설명을 바탕으로 보았을때, 유튜브를 떠도는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우주론은 과학이라기 보다는 시청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음모론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1] 그런 댓글 중에서도 가장 많이 봤던건 ‘광속불변의 법칙은 우주서버에 한계치를 그렇게 정해놨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식의 사고방식은 신이 세상을 그렇게 창조했다는것과 별 다를 바가 없고, 더욱이 광속불변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출발점인데 그 이해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리기에 매우 해로운 논리라 생각한다.
[2] 이 논문은 글을 쓰는 도중 즉석 구글링으로 찾은 것이다. 실제 과학자들은 원자 몇개가 물에 용해될때 그 원자를 둘러싼 물분자의 정확한 거동에 대해서 조차 아는바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