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명제에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할까? — 그것이 참이라는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동의가 있다. 하지만 일반대중 상당수는 여전히 반대한다. 위키피디아 문서 ‘Scientific consensus on climate change’를 보면, 그런 학계와 일반대중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간극이 도표로 정리되어있다 :
일반대중은 ‘인류가 기후변화를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한 학계의 의견일치 과소평가하고 있다[1]. 2019년에서 2021년 사이에 수행된 연구들에 의하면[2], [3], [4], 해당 명제에 대한 학계의 의견일치 정도는 98.7~100% 이다.
이와 같은 의견일치는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쉽게 확인 가능하다. 거의 모든 주류 저널/언론/국제기구 등에서는 기후변화문제를 알리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NASA는 기후변화 관련 자료를 다루는 별도의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영국립과학회Royal Society와 미국립과학학회National Academy of Science는 합동으로 일반대중을 위한 기후변화 교육자료를 발간한 바 있다. 2021년 노벨물리학상은 두명의 기후학자와 한명의 통계물리학자에게 수여되었는데, 기후학자 Manabe와 Hasselmann의 수상업적은 ‘지구기후와 그것의 변동성에 대한 신뢰 할 수 있는 물리모형을 통해 지구온난화를 예측한 공로’이다[5].
‘인류가 화석연료를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 이후 지구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졌으며, 그로인해 지구표면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명제의 참/거짓여부는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당장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들 — 예를들어 :
-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극미량이므로 지구온도를 상승시킬 수 없다.
- 지구온도는 온실가스가 아니라 태양활동에 의해 결정된다.
-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밥이다. 따라서 인간이 대기중 CO2 농도를 높이면 식물은 더 잘 자랄 것이며, 지구는 더 푸르러 질것이다.
- 공룡이 살던 당시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고, 지구는 더 푸르렀다. 오히려 지금의 지구대기엔 이산화탄소가 더 필요하다.
- 지구온도는 항상 오르락 내리락 변화 해왔으며, 지금의 온도변화는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정도 선에서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6]. 과학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반대로 그 명제는, 수십년에 걸쳐 그 똑똑하고 의심많은 과학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비판을 모두 견뎌냈다. 그렇게 ‘인류활동으로 지구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명제는 ‘지구가 둥글다’는것 만큼이나 확고한 사실이 되었다.
내가 물리학과를 다니며 알게된 한가지 사실은, 이름있는 물리학자들의 메일함엔 ‘영구기관을 만들었다’는 재야在野 물리학자들의 메일이 산더미 처럼 쌓여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 그런 주장이 에너지 보존법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어떤 명제에 대한 100%에 달하는 동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독재’나 ‘독단’을 뜻하진 않는다. 우주와 자연을 기술하는 과학명제 중에는 참/거짓을 분명히 가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과학자들은 그런 명제들을 면도날 삼아 새로운 주장의 참/거짓을 판별한다. ‘인류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해 100%에 달하는 동의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이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관측자료를 통해 지구가 열적평형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지구표면에는 평균적으로 1m2마다 초당 약 1J의 에너지가 쌓이고 있으며, 온실기체효과가 아니면 그 누적되는 에너지의 원천을 설명 할 수 없다. 온실가스가 아니라 태양활동 증가가 그 원인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데, 이는 물리법칙에 반하는 주장이다. 대기 열전달 법칙에 의하면, 태양활동의 증가는 대기권 온도와 성층권 온도의 동시상승을 유발한다. 반면 태양활동은 그대로이고 대기중 CO2 농도만 증가한다면, 대기권 온도는 상승하지만 성층권 온도는 하강한다[7]. 위성관측자료를 보면, 지구대기로 입사되는 에너지는 1970년대 후반 관측시작 이례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반대로 지표온도는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추세를 보인다[8]. 반면, 같은 기간동안 성층권 온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9]. 성층권 오존농도가 감소추세에서 증가추세로 바뀐 2000년대 초반 이후에도 그런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은, 인류의 탄소배출을 감안하지 않으면 설명 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인류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는, 그렇게 학자들이 던질 수 있는 모든 질문에 대해 물리법칙에 부합하는 일관된 설명으로 그 자신의 ‘참’을 증명해냈다. 헌데, 그렇게 탄탄한 기반위에 서있는 ‘인류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라는 명제를 왜 많은 대중들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가? 나는 그 원인이 지구온난화 문제의 근본적 성격에 있다고 생각한다.
1987년 9월 채결된 몬트리올 의정서는 염화불화탄소 Chlorofluorocarbon, CFCs 를 비롯한 오존층 파괴 물질 전반에 대한 생산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국제적 환경협약으로 여겨지는데, 이 협약에 중요한 과학적 토대를 제공한 Susan Solomon은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세가지의 ‘P’가 만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10] : Personal, Perceptible, Practical — 즉, 오존층 문제는 일반대중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인식될 수 있었고 Personal, 그 문제를 감각을 통해 직접 인지 할 수 있었으며 Perceptible, 해결을 위한 현실적 해결방법을 제시 할 수 있었기에 Practical 단기간에 성공적인 협약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존층 파괴가 피부암이나 백내장 등 개개인에게 직접적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쉽게 알릴 수 있었고,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있는 관측이미지를 통해 대중들은 그 문제를 감각을 통해 직접 인지할 수 있었으며[11], 오존층에 영향을 주지 않는 다른 화학물질로의 대체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았기에 전지구적 협의와 행동을 촉발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그 중요성에 있어 오존층 문제보다 결코 뒤쳐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공조는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그런데 따져보면 지구온난화 문제는 그 ‘3P’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걸 알 수 있다.
2024년 5월 현재, 지구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도 더 높다. 2016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은 지구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온도기준 2도 이하로 억제 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가 10도 이상의 일교차에도 별일 없이 산다걸 생각해보면, ‘2도 상승’에 대한 걱정을 호들갑으로 여기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듯 느껴진다. ‘하늘에 구멍이 났다’는 오존층 문제에 비하면 온난화문제는 ‘확실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고, 그렇게 그것은 나의 일상과는 무관한 - 즉, ‘Personal’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되기 쉽다. 또 ‘1~2도 상승’이라는 값 자체는 ‘뚫린 오존층으로 강한 자외선이 들어와 피부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 만큼 확실히 느껴지는 무언가는 아니다. 즉, 그것은 ‘Perceptible 감각으로 인지 가능한’ 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 평균체온이 몇도 오르는것이 건강상 심각한 문제이듯, 지구 평균온도가 몇도 오르는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논문인용 총횟수가 2만3천회를 넘는 저명 기후학자 David Archer는, 2006년 발간한 교과서인 <Global Warming>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1도의 온난화는 중세온난기 Medieval Warm Period 동안 미국 남서부에 있었던 장기적 가뭄과 같은 지역적 위험을 유발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충격적 변화를 일으키진 않을거라 본다. 하지만 빙하기가 끝나면서 발생한 기후변화의 강도를 생각해보면[12], 5도의 온난화는 지구전체에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024년 현재의 대기중 CO2 농도425ppm는 산업화 이전280ppm에 비해 약 1.5배 높다. 연평균 약 2.5ppm의 증가속도가 이어진다면 CO2 농도가 산업화 이전의 2배가 되는 시점은 약 2080년 경이다. ‘기후민감도Climate sensitivity’는 대기 중 CO2 농도가 2배 증가 할 때 마다 평균기온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일부 기후모델에서는 그 값이 5도가 넘을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후모델간의 차이는, 주로 구름을 어떻게 시뮬레이션 하는지에 그 원인이 있다. 구름이 온난화를 증폭시킨다는 그 경향성 자체는 기상관측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되었지만, 그 증폭정도가 어느정도 인지에 대해서는 모델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모델의 기후민감도가 Archer가 말한 ‘5도’를 넘어간다는건, 인류전체가 21세기가 지나기 전에 재난적 상황을 맞이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중대한 결과이다.
온난화문제는 해결방안 측면에서봐도 오존층문제보다 훨씬 더 비실용적이고 복잡하다. 앞서 언급한 Solomon 박사의 설명을 보면, 당시에는 문제가 되는 에어컨냉매나 스프레이분사제 등에 대한 대체제가 이미 충분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오존층연구는 듀퐁 DuPont 과 같은 기존 화학산업기업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는데, 오존층 문제는 ‘3P’를 훌륭히 만족시키는 문제였기에 그런 반대를 비교적 쉽게 넘어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온난화문제의 해결은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지구온난화 문제의 근본원인은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이고 그 해결책은 그것의 저감이다. 혁명적인 탄소포집 기술의 등장으로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었으면 좋겠지만, 아직 인류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인간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에 그 해결책 또한 인간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 — 소고기를 먹을 자유[13], 마음껏 차를 타고 다닐 자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자유 등 — 를 제한하기에 반발을 사기 쉽고[14], 이는 Solomon이 말하는 ‘Practical’에 정면으로 반한다.
오존문제를 마주한 인류가 ‘끓는물에 던져진 개구리’였다면 온난화 문제를 마주한 인류는 ‘서서히 끓는 물에 담궈진 개구리’라 할 수 있겠다[15]. 개인적으로, 지구온난화 문제는 인류지성을 가늠 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라 생각한다. ‘그것이 문제라는것 자체를 인식 할 수 있는지’가 첫번째 가늠자이다. 또한 그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협력을 요하는 문제이기에, ‘전세계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에따라 전 지구인들이 동참 할 수 있는지’가 두번째 가늠자가 될 것이다.
∷
[1]"Public perceptions on climate change" PERITIA Trust EU - The Policy Institute of King's College London. June 2022. p. 4.
[3] Greater than 99% consensus on human caused climate change in the peer-reviewed scientific literature - IOPscience
[4] Consensus revisited: quantifying scientific agreement on climate change and climate expertise among Earth scientists 10 years later - IOPscience
[5] The Nobel Prize in Chemistry 1995 — 1995년 노벨화학상은 오존층 파괴의 화학적 기작을 밝힌 세명의 화학자에게 수여되었다. 그들의 연구는 1970년 초중반에 수행되었고, 이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국제 환경협약으로 여겨지는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의 과학적 기반이 되었다. 즉, 어떤 주제에 대해 노벨상이 수여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길고 처절한 검증과정을 거쳐 확고한 지식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995년에 오존층 문제에 대해, 2021년에 지구온난화 문제에 노벨상이 수여되었다는 것은, 그런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6]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거나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없어 답답하다면, 앞서 언급한 영/미 국립과학회의 교육자료를 일독하실것을 강력 추천드린다.
[7] Thermal Equilibrium of the Atmosphere with a Given Distribution of Relative Humidity (1967, Manabe and Wetherald)
[9] Stratospheric Temperature Trends over 1979–2015 Derived from Combined SSU, MLS, and SABER Satellite Observations (2016, Journal of Climate)
[13] Treating beef like coal would make a big dent in greenhouse-gas emissions (2010, Economist) — 지구온난화 대처방안으로 ‘육식의 제한’을 드는것은, 건강상 육식보다 채식이 좋기 때문이거나 그 제안자가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인것은 전혀 아니다. 지구온난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는데 있고, 육식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배출을 유발한다. 2010년 기준 소고기 소비로 인한 CO2 배출 총량 (CO2 equivalent) 은 4.3Gt인데, 이는 일본의 2010년 CO2 배출 총량인 1.2Gt 보다 무려 3.6배 가량 높다. 그런 수치를 감안한다면, ‘쇠고기를 석탄처럼 취급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다’는 이코노미스트 기사 제목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14] 미국 보수진영에서는 과반이상이 ‘인류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며, 그 비율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온난화문제가 그들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인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들이 말하는 ‘자유’엔 ‘책임’이 전제되어 있을 것이다. 미국은 누적 CO2 1위국가이며, 1인당 CO2 배출량 또한 언제나 최상위권이었다. 그런 그들이 과학을 부정하며 그들의 최우선 가치를 ‘책임 없는 자유’로 전락시킨다는건, 참으로 개탄스럽고 걱정되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15] Boiling frog - Wikipedia — ‘끓는물 속의 개구리 비유’는 의미전달에 있어선 문제가 없지만, 그것은 실제 사실과는 정반대라 한다. 실제로 서서히 끓는 물속의 개구리는 결국 뛰쳐나오고, 끓는물에 던져진 개구리는 즉시 죽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