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병 Nobel disease’ —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상 이후 보이는 지적기행을 일컷는 말이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공로로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쇼클리는 수상 후 일류 물리학자에서 아마추어 유전학자가 되어 근거없는 인종차별론을 펼쳤다. 그는 ‘흑인이 백인보다 저능한것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며, ‘흑인의 높은 출산율은 그들의 지능을 떨어뜨리므로 경제적 지원을 통해 유전적으로 열등한 이들의 불임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죠셉슨 효과 Josphson effectt를 발견한 공로로 1973년 노벨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죠셉슨은 ‘물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미신을 믿었으며, 유전자증폭기술인 PCR을 개발한 공로로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캐리 멀리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형광색 라쿤을 만난적이 있으며 그는 외계인일것’이라 주장했다. 이 증상들이 모두 수상 이후에 발현되었다는 사실은, 그 원인이 노벨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 극단적 사례들을 모든 수상자로 확대하는것은 지나친 일반화일 것이다. 하지만, 학자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영예를 얻고난 후에 어느정도의 자아도취와 연구동력상실이 따라온다는것은 분명한 사실인듯 하다[1]. 2022년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는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역대 필즈상 수상자들을 추적조사 하여 대조군과 비교해보니, 그들의 연구실적이 수상 이후 현저히 줄었다는 논문을 봤다’ 고 말했다[2]. 생각해보니 - 굳이 노벨이니 필즈니 가릴필요도 없겠다. ‘VIP 신드롬’이나 ‘연예인병’ 또한 장르만 다를 뿐, ‘큰 성공이 주는 자아도취’라는 동일선상에 존재하는 증상이다.
노벨병의 가장 최근 사례는 2022년 양자중첩현상에 대한 실험적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클라우저 John Clauser이다[3]. 그는 노벨상 수상을 즈음하여 학계를 은퇴했다. 그리고 수상 후 반년쯤 지난 2023년 6월 — 그는 한국 과기부에서 주관하는 ‘퀀텀 코리아 2023’에 개막식 축사자로 초청받았다. 헌데 ‘양자중첩실험의 대가’로 초청된 그는, 갑자기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없는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4].
‘진실은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는 원론적 이야기로 운을 뗀 그는, 주류 기후과학자들의 연구는 그런 ‘주의 깊은 관찰’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것 처럼 말했고, 더 나아가 IPCC를 ‘위험하고 잘못된 기후정보를 퍼뜨리는 최악의 원천’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축사내용을 아무리 ‘주의 깊게 관찰’해도, 기존 기후과학의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는것인지 - 그 근거를 찾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장 그의 전체 논문목록을 뒤져봤고, 그렇게 클라우저가 평생 기후과학과 관련한 단 한편의 논문도 쓰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기존 기후과학에 대한 클라우저의 비판은 논리와 관측을 기반으로한 정상적인 연구활동이 아니다. 그는 기후에 관한 논문을 쓰지 않고, 학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기후위기 부정론자들의 후원단체에 가입하고, 그들의 결집을 도모하는 다큐멘터리나 인터뷰에 출연한다. 그런 클라우저의 말과 행동은 노벨의 권위를 무기삼는 ‘노벨병’의 전형적 증상이다. 그리고 그렇게 공식적인 토론장 밖에서 떠드는 말 또한, 허공에 떠다니는 공허한 낭설일 뿐이었다.
나는 부정론자들의 모순을 일반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주장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구는 평평하다’[5]거나 ‘상대론은 틀렸다’[6]는 주장을 듣는것 만큼이나 괴로웠다. 괴로운 이유 중 한가지는 이런것이다 : 부정론자들은 그 한명한명마다 내세우는 논리가 다 다르며, 그 논리들은 물리법칙위에서 잘 결합되지않고 다 따로 놀고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종류의 헛소리를 마주할 때마다 그 새로운 출발점에서 모든것을 다시 따져봐야 했다.
윌리 순 Willie Soon은 태양이 지구기후를 결정하는 거의 절대적인 요소이며, 지구평균기온그래프는 도시열섬효과로인해 오염되었다고 주장한다[7]. 스티븐 쿠닌 Steven E. Koonin은 그런 윌리순의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기후 시뮬레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8]. 윌리엄 하퍼 William Happer는 주로 ‘이산화탄소는 포화되었다’는 아주 낡은 오류를 들먹인다[9]. 클라우저는 또 다른 원인을 들먹이는데, 그가 대중들에게 펼치는 핵심논리는 ‘구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명 ‘Cloud Feedback’은 이산화탄소 농도증가로 인해 촉발되는 여러 피드백 중 불확실성이 가장 큰 요소이다. 하지만 그 어떤 연구결과도 그것의 음의 피드백으로 작동하여 이산화탄소의 온난화를 상쇄시킨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수의 기후시뮬레이션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Cloud Feedback은 양의 피드백이라 말하고, 또한 그것은 관측결과와도 일치하는 사실이다[10]. 만약 클라우저가 구름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할말이 있다면, 기존 시뮬레이션과 관측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비판하는 논문을 써야 한다. 논문은 육하원칙에 입각한 학자들의 공식 소통방식이다. 또한 그것은 동료학자들의 검토 Peer review 를 거치기에, 어떤 논문이 좋은 저널에 개제되었다면 그 사실 자체로써 상당한 공신력을 갖게된다.
그 ‘학자들의 공식 토론장’ 바깥에서 떠드는 클라우저의 행태는, 양자중첩을 연구한 선배 과학자들이 다져놓은 훌륭한 연구풍토에 대한 훼손이다. 또한 현인류의 최대숙제인 지구온난화에 대한 근거없는 낭설을 펴는것은, ‘인류에 대한 공헌’이라는 노벨정신[11]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클라우저는 ‘양자중첩 Quantum Entanglement’에 대한 실험적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연구를 두세대 거슬러 올라가면 아인슈타인이 나온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비국소성’에 반대 했는데, 그는 양자역학을 비판 할 때 클라우저처럼 여기저기 쏘다니며 말로 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연구자들과 함께 비판논문을 썻다[12]. 그 논문으로 부터 30년 후 - Bell은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를 실험적으로 검증 할 수 있는 수학정리를 고안했고[13], 클라우저는 그 정리에 대한 실험으로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였다[14]. 과학은 그렇게 학자들간의 건전한 비판과 반론을 통해 발전한다. 하지만 클라우저는 ‘동료검증’의 링 밖에서 오직 ‘노벨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무기삼아 오랜시간 처절한 연구로 쌓아져온 기후과학의 성과를 마음대로 난도질내고 있다. 헌데 클라우저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사실은, 기후 부정론자들의 ‘자기모순’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앞서 말했듯, 부정론자들이 저마다 다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자기모순이다. 또한 일부 부정론자들은 클라우저의 사례를 들며 ‘노벨상 수상자는 틀릴 수 없다’는 논리를 펴는데[15],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인간의 활동’임을 밝힌 과학자들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은 부정론자들이 데이터 뿐만아니라 ‘노벨’이라는 권위 또한 본인의 입맛에 맛게 선별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혹시나 이 글을 기후 부정론자가 읽고 있고, 또 ‘노벨상을 받은 클라우저의 논리는 틀릴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 노벨상의 수여주체인 스위스 한림원에서 쓴 2021년 노벨물리학상 해설자료를 반드시 일독하기 바란다. 그리고 해당 문서의 다음 내용을 기억하기 바란다 :
마나베 슈쿠로와 클라우스 하셀만은 알프레드 노벨의 정신에 따라 지구기후에 대한 지식을 위한 견고한 물리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인류에 지대한 기여를 남겼다. 기후모델은 명백하다. 우리는 더 이상 몰랐다고 말할 수 없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는가? — 그렇다.
그 원인은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인가? — 그렇다
그것을 자연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 그렇지 않다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이 기온 상승의 원인인가? — 그렇다
⸬
[1]
앞선 사례들만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형편없는 무언가로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매우 흔한듯 하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2017년 1학기 — 나는 대학원에서 ‘물리학 특강’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놀랍게도 교수는 2012년 노벨상물리학상 수상자인 Serge Haroche 였다. 그 수업은 한두번으로 끝나는 특강이 아닌, 한학기 동안 매주 진행되는 3학점짜리 정규수업이었다. 하지만 강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 수업도 벌써 7년전이라, 100%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 아마 처음 2번 정도만 Haroche 교수님이 직접 들어와서 강의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많아 봐아 3~4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기 시작 후 1~2주일만에 Haroche 교수는 한국을 떠나버렸다. 그 후 학기가 끝날때까지 나머지 모든 강의는,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전 강의 녹화영상으로 대체했다. 그렇게 40명이 넘는 대학원생들은 매주 아침 2번씩 강의실에 모여, ‘노벨상 수상자의 인강’을 들었던 것이다.
당시 학생일땐 못느꼈는데 - 지금 돌아보면, 그건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교수가 누가됬건 -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3학점 짜리 수업에서 첫 일주일만 수업하고 나머지는 지난 강의영상으로 대체한다? 학생들은 과제도, 평가도, 체점도 피드백도 없이 -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며 한마디 질문도 할 수 없는 스크린 속 교수를 보며 뭐 하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체 한학기를 보내야 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교수의 무책임’ 중 최악이었다. 아마 Harche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 정도되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줄 알았던 모양이다.
[5]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 나는 ‘푸코의 진자’를 설명하는 쇼츠영상 업로드 후 다수의 지평론자들에게서 악플세례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진동하세요’라는 채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무슨일인지 - 삭제 되었는지, 비공개 되었는지 - 그 채널은 유튜브에서 사라졌는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최근 다시 활동을 시작한것 같다.
악플을 받던 당시- 나는 그들의 영상을 보고 블로그 포스팅을 한적 이 었는데, 기후 부정론자나 지평론자 같은 음모론자들의 논리를 들여다 보는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고 또 엄청난 시간낭비였다. 일반대중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나로써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할 필요가 있었지만, 무언가를 진지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그런 음모론을 반박하는데 시간 쓸 생각을 말기를 추천한다. 그것보다는, 기존의 잘 정리된 교과서와 연구결과들을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 지적성장에도, 정신겅강에도.
[7] <Global Warming: Fact or Fiction? Featuring Physicists Willie Soon and Elliott D. Bloom>, <Ph.D. Scientist Willie Soon Easily Debunks Climate Change Propaganda>
[9] 금성은 지구보다 태양과 더 가깝지만, 황산구름으로인한 높은 반사율 bond albedo = 0.76 로 인해 지면으로 입사되는 태양에너지는 더 작다 (지구 : 236 W/m2, 금성 : 156 W/m2). 하지만 금성표면온도는 464℃로, 납의 녹는점보다도 140도 가량 더 높다.
금성 대기의 수증기 총량은 지구 대기에 비해 약 25% 가량 적고, 이산화탄소 총량은 지구에 비해 무려 22만배 가량 더 많다. Happer의 주장처럼 300~400ppm 정도 선에서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가 포화된다면, 금성은 표면은 왜 그렇게 뜨겁나? 복잡한 대기열전달 이론을 설명 않더라도, 금성에서 일어나는 물리현상은 Happer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한다.
[11] Nobel Prize - Wikipedia : … for contributions that have conferred the greates benefit to humankind in the areas of Physics, Chemistry, Physiology or Medicine, Literature, Economics and Peace.